한남금북정맥 5구간 산성고개~질마재 정맥길 /트랭글 GPS 22.44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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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4 일요일 05시00분 남원시청출발 날씨 : 맑음 조망 : 좋음 기온: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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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상당구 , 괴산군 청안면 ,청원군 미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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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고개(08:13)-상당산성 서문(08:46)- 상당산(08:59)-새터고개(10:43)-이티재(11:24)
구녀산(12:28)-분젓치(12:57)-방고개천문대(13:58)-좌구산(14:56)-질마재(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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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구간거리 : GPS : 약 22.4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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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3분출발~15:54분도착 약 07시간41분 (남원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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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산경문화연구회 1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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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고개 출렁다리
*위치: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산3번지외 1필지
*공사기간;2007년05월04일~2007년06월26일
*규모;길이 43m,폭 1.5m, 높이 15m
*구조;현수교 H형빔
*사업비;134백만원
*시행처;청주시청
*시행자;수풍산업 주식회사
상당산성[上黨山城]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이며 사적 제212호,지정면적 180,826m²,
원래 그 자리에 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상당산성은 1716년[숙종 42]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백제시대에 청주목[淸州牧]이 상당현[上黨顯]이라 불렸고,숙종 때 축성기록에 '上黨基址 改石築[상당기지 개석축]'
이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8부능선에서 시작하여 성안의 골짜기를 포함하고 있는 동서의 등성이를 타고 사행[蛇行]하는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4.2km의 유구가 잘 남아 있는 서벽과 동벽의 높이는 약 3~4m에 이른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나 성벽 위에 설치하였던 성가퀴[城堞;성 위에 낮게 쌓은 담]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성벽의 안쪽은 돌을 깨뜨려 틈을 메운 뒤 흙을 채우고 다지는 공법을 사용하였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서쪽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곽시설로는 남문을 비롯하여 동문과 서문,3개의 치성[雉城;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
2개의 암문[暗門: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게 숨겨 만든 성문],
2곳의 장대[將臺],15개의 포루[砲樓]터 외에 성안 주둔병력의 식수를 대기 위한 대소 2곳의 연못이 있다.
정문인 남문 주변에는 3개의 치성과 장대,4곳의 포루가 설치되어 있다.
숙종 때의 개축 이후에도 1731년[영조 7] 남문 문루를 세우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했으며,
1802년[순조 2] 1,176개의 첩[堞]을 시설하여 산성으로서의 완벽한 격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 뒤 성벽이 퇴락하고 문루가 모두 없어져 버렸는데,1971년 석출 부분을 개축하였고,
1977년부터 1980년까지 남문,서문,동문의 누문을 모두 복원하였다.
상당산[上黨山/해발491.5m]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는 청주 상당산성의 주봉이며
상당산이란 이름은 삼국시대에 청주가 백제의 상당현이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상당산은 서쪽과 남쪽은 급사면을 이루는데,이 골짜기에 흐흐는 물은 무심천[無心川]을 거쳐 금강으로 흘러들어간다.
반면 동쪽은 완만한 지형을 이루는데,이 골짜기의 물은 미원천을 거쳐 남한강에 합수된다.
산성 안에 있는 성내방죽은 바로 상당산 동쪽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물이 저수된 것이다.
상당산은 청주의 동쪽 고봉으로,전적지로 유서 깊은 청주 상당산성이 있다.
산성은 둘레가 4.2km,면적이 991.735537m²나 되는 자연의 굴곡을 그대로 이용하여 성을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구녀성[九女城]의 유래
축성시기는 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석축형태로 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진다.
이곳 산정에 아들 하나와 아홉 딸을 가진 홀어머니가 있었다.
이들 남매는 모두 장사였는데 항상 불화가 잦아 마침내는 생사를 건 내기를 하게 되었다.
내기인 즉,딸 아홉은 산꼭대기에 성을 쌓는 일이고 그 사이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 오는 것이었다.
내기를 시작한 지 5일이 되던날,어머니가 상황을 살펴보니 성은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 가는데
서울간 아들은 돌아올줄 몰랐다.
이에 내기에 지게되면 아들이 죽게 될 것을 생각한 어머니는 가마솥에 팥죽을 끓여 딸들을 불러모아 팥죽을 먹으며
천천히 해도 되리라 했다.
뜨거운 팥죽을 식혀 먹고 있는 동안 아들은 부릅튼 다리를 이끌고 피를 흘리며 돌아왔다.
그리하여 내기에 진 아홉딸은 성위로 올라가 몸을 던져 죽고 집을 나가 돌아올 줄 몰랐다.
어머니도 남편의 무덤앞에 아홉딸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여생을 보내다가 숨을 거두었다.
이 때 당시 죽은 아홉딸과 부모의 묘는 이 성안에 2줄로 배열된 11기의 묘라고 전해진다.
구녀산[九女山/해발484m]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와 상당구 미원면에 위치한 산으로
가벼운 하이킹 정도로 산행을 마칧 수 있으며,등산로 입구에는 약수목욕탕이 있어 약수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구녀산은 남한강의 발원지인 좌구산[座龜山,657m]에서 남서쪽으로 북일면 우산리 및 미원면 대신리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구녀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구녀성은 정확한 축성기록은 없으나 신라시대 백제의 낭비선[지금의 상당산성 또는 삼년산성]과 대결하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전하고 있다.
특히,이곳은 민간신앙의 집산지로 출생과 무병을 기원하는 서낭지가 여러곳에 산재하고 있으며,오랜기간 신성시 되던 곳으로 노송과 원시림이 천연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산의 내부는 성터로써 우물과 수원지의 흔적이 남아 놀이와 휴식이 적합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서북쪽 미호평야와 청주의 상당산성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전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초정리에서 3km쯤 떨어진 곳에 운보 김기창 화백의 사저인 '운보의 집'과 초정리 입구
내수 사거리에서 충주 방면으로 약 2km쯤 가다가 우측 금암리로 들어서면 3.1운동 당시 민족지도자인 손병희 선생의 생가와 사당이 복원되어 있어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증평 좌구산 천문대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솟점말길 187(증평읍), 증평좌구산 휴양랜드 내에 위치한 증평 좌구산 천문대는 주민 및 청소년들에게 천체관측기회제공과 과학문화보급을 위해,국내 최대 356mm 굴절망원경 및 천체관측장비를 갖추고 운영하고 있고,
타 천문대에 비해 깨끗한 밤하늘을 간직하고 있어 은하수 및 Deepsky 관측이 가능하다.
[주요시설물]
1)우주를 보는 창(주망원경);10m 대형 관측돔에 국내 최대 356mm 굴절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2)우주를 보는 눈(보조관측실);16인치와 12인치 반사굴절망원경 및 150mm와 130mm 굴절망원경을 설치하여 달,행성,이중성,성단,성운 등 천체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관측할 수 있다.
3)별이 빛나는 밤(천체투영실);10m의 원형 돔스크린에 디지털 플라네타리움을 이용하여 별자리,천제의 운동,우주의 모습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충절바위: 밤티골[증평읍 율리]에 살았던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은 임진왜란 진주대첩 김시민 장군의 손자로서
백이전을 11만3,000번이나 읽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독서광이었다.
1604년[선조37년]에 태어난 김득신은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머리가 아둔하고 몸이 허약해서 좌구산에 올라 심신수련을 했다.
김득신은 좌구산에 오를 때마다 칼로 커다란 바위를 내리치면서 다짐을 했다.
"내 비록 지금은 아둔하지만 과겅 급제하여 반드시 나라에 쓰임을 받으리라"
하루도 빠짐없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충절을 다짐하던 김득신의 칼날에 드디어 바위가 둘로 갈라졌다.
김득신의 수만 번의 다짐과 쉼 없는 노력은 마침내 환갑이 다된 59세[1662년 현종3년]에 증광시 병과에 급제하여
대기만성형의 표본이며 조선중기의 대문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이후로 사람들은 동쪽으로 갈라진 바위를 보고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김득신의 충성심의 표상'이라며 충절바위라고 불렀으며
그의 묘는 좌구산 기슭 율리 밤티 마을 뒷산에 있다.
좌구산[座龜山/해발657m]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덕리와 괴산군 청천면 사이에 있는 산으로 산의 모양이 거북이가 앉아 남쪽을 바라보는
형상이라고 하여 붙여졌다고 하는데,'좌귀산'이라고도 읽는다.
또한,한자 표기를 달리해 '좌구산[坐拘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조선 광해군 때 이곳에 은거해 인조반정을 모의하던 김치[金緻]가 좌구산에서 개가 세 번 크게 짖어대는 소리에 깨어
몸을 피함으로써 훗날 인조반정을 성공시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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